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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창비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배운다. 사회, 수학, 과학, 언어, 지리, 역사처럼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 화법, 예절과 같이 사회를 통해 배우는 것들.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들은 살아 있을 때 유효한 것들이다. 죽음 이후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서 애써 모른 척하거나, 알고 싶어도 특별한 것을 얻을 수가 없다. 죽음이란 각자 다르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헤어짐의 순간이 다가오면 이미 많은 사람들과 지내왔고 함께한 시간이 끝난다. 그런 막연하고 갑작스러운 헤어짐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한다.

 

  책의 표지에서 말한다.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발상이었다. 늘 병원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많은 생명이 죽는 곳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며칠 전 병원에 갔을 때 느꼈다. 이런 저런 검사를 제안했던 의사께서 '다른 검사를 추가로 하신다고 해서 처방이 달라지진 않습니다.'라고 말하셨다. 그래서 별 다른 추가 검사를 하지 않고 처방을 받았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있고, 모르는 병일 수록 더 자주 일어날 거라 생각한다. 단순 골절도 사람마다 경중이 다르고, 한창 건강하던 사람이 어느새 중병환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니까.

 

  병상에 누운 환자의 하루와 같은 병을 가진 사람이 병을 모르고 살아가는 하루는 크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병원에 지내며 죽음을 맞이하느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밖에서 죽음을 맞이하느냐. 억지로 죽음을 연장하는 건 아닌지, 이미 살아가기 힘든 사람에게 괜한 희망을 주는 건 아닌지. 그래서 책은 말한다. 죽음을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을 배우고 준비할 수 있다. 한 치 앞도 모르고 죽음에게 당하기보다 죽음을 준비해두고 배워둔다면 슬기롭게 죽을 수 있다고 책은 말한다.

 

  옛말에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안다'는 말이 있다. 내 몸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본인이다. 하지만 나 조차도 그 신체를 잘 알려고 하지 않는다. 고장난 순간에 고쳐 줄 병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어도 내 몸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계도 망가졌을 때 고칠 수 없는 순간이 있고, 고친다 한들 예전만큼 성능을 발휘할 수 없기도 하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서 고치는 과정 중에 한 순간의 실수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살아가는 것만큼 죽음을 슬기롭게 준비하기 위해 이 책을 추천한다.

 

  많은 이들이 죽음을 대비하기 위해 노력한다. 운동을 하기도 하고, 약을 먹기도 한다. 수술을 하기도 하고, 보험을 들기도 한다. 기대수명은 늘어났지만 누구도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는지는 모르는 현대 사회. 이 책 <죽음을 배우는 시간>에서는 몇 년 동안 말해 오던 '웰빙'과는 반대되는 '웰다잉'에 대해 이야기한다. 잘 죽는다는 것. 잘 살기 위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지만 잘 죽는 건 쉬쉬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잘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생명보험을 들어서 혹시라도 죽게 되면 보험금으로 남은 가족들이 잘 살아가길 바랄 뿐. 그 이상 생각해 보질 않았다. 하지만 타인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의사님께 죽음이란 어떨까. 수많은 생과 사를 지켜본 의사 선생님의 기록이 여기에 있다. 잘 죽기 위한 교과서가 여기에 있다. 죽음을 모르고 당하기 싫은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함부로 덤벼야 할 마지막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