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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미운 당신과 헤어졌다. 더 아플 일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 일들 다 지워버리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며 지나던 길엔 당신이 없었으니까, 집에 돌아오는 퇴근 길에도 당신이 없었으니까 다행이었다. 지나온 모든 길에 당신을 꼼꼼히 지우고 닦아냈다. 그리고 자국이 남았다. 지우개는 아주 잘 들었지만 종이에는 글씨 자국이 남듯이. 지운 당신은 길에도 마음에도 남아버렸다. 돌아오지 않을 당신이 남아버렸다. 눌러 쓴 사랑이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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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하게 싸우던 당신과 헤어졌다. 멀리 보자던 우리는 결국 한치 앞을 못 보고 갈라졌다. 갈라진 우리는 각자 마음을 정리했다. 한동안 당신과 가던 길은 지나가지도 않았다. 혹시 마주칠까봐. 서른 번정도 새로운 길을 다녀보니 이제 다 지워진 듯 후련했다. 억지로 새 길로 가게 발을 고칠 필요가 없어졌다. 여기저기 남은 자국을 피해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였다. 당신이 생각보다 많이 묻었기 때문이다. 묻어버린 당신은 털어지지 않았고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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